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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Holy Hill에 내린 가을

시카고 근교에서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지역을 꼽으라면 스타브드 락(Starved Rock)과 하우스 언더 락(House on the Rock)을 많은 사람들이 추천 하리라 본다. 사실 단풍은 우리 집 뒤란에도, 우리 주변에 작은 파크에서도 볼 수 있지만 더 넓고 다양한 색의 단풍을 만나려고 오늘 위스컨신 Holy Hill로 향한다. 부쩍 쌀쌀해진 새벽 공기로 주변에 나무들은 점점 더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앞 차 뒷 유리창에 가로수의 잎들이 아롱지고 가을 햇빛이 따갑게 내리쬐는 들길을 2시간 남짓 달려 당도한 곳. 120년 동안 우거진 숲을 내려다보며 산 위에 우뚝 서 있는 고풍의 성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하늘로 치솟은 두 개의 뾰족한 타워가 구름에 닿았고 때마침 12시 미사에 참석하려는 인파와 관광객들로 운동장보다 더 큰 파킹장엔 이미 빽빽하게 자동차로 메워져 있었다.     끝을 모르게 뻗은 나무들 사이를 걷는다. 나무가 뿜어내는 향이 온몸에 배어 가을 정기로 가득하다. 좁은 길을 오르다 산 중턱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아 올라 온 산 아래를 내려다 본다. 구불구불한 길 위로 삼삼오오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서 한 길만 택하여 이곳까지 왔다. 오늘 이곳으로 떠나 오면서도 여러 갈레 길 중 조금 시간은 더 걸리지만 풍광이 아름다운 로컬 길을 일부러 택하였다. 어쩌면 삶은 무수한 선택의 선 위에 존재한다. 그러니 후회나 불평은 부끄러운 일이다. 오는 길 내내 가을은 내게 부딪혀 왔다. ‘보고 싶은 너 / 가을 햇볕에 눈물도 말려야지’ 어머니 같은 김남조 시인의 시 귀절이 생각났다. 가을은 내게 가르치지 안았지만 나는 가을의 묵언수행을 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얼마나 소중한 선택이었는가. 그 선택으로 나는 오늘 Holy Hill 산 중턱에서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내고 있다.     내 앞에 서 있는 너   반가움으로 흔들리는 들꽃   그리운 얼굴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가을이 내려 앉은 나무마다   노을빛 영롱한 계절을 담아   저마다 폼 내던 삶도   이젠 내려 놓아야 할 시간 버린 뒤 찾아오는 따뜻함     양지 밭에 쪼그려 앉아   땅 파며 놀았던 유년의 아련한 행복 오랜 시간 흐른 뒤 시간과 생명 속으로   잔잔한 울림 되어 밀려오는데 하늘은 구름을 그리고 나무는 스스로를 붉히며 옷을 벗고 바다는 물결을 밑그림처럼 무늬 했는데   나는 오늘 어떤 내가 되어가고 있나     마음껏 그 싹을 피워 오랜 인고의 시간을 흐른 후에 피어난 꽃들도 자신을 버린 후에야 비로소 씨앗을 맺을 수 있다. 작은 실개천을 흐르던 물 줄기도 함께 어우러지며 재잘대던 강줄기를 만나 점점 깊어지고 넓어졌던 행복한 기억을 떠난 후에야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초록의 무성한 입들이 하나 둘 저마다의 색깔로 변해 가는 깊은 가을. 나무도 우리 인생도 이와 같이 변하여 간다.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면 잎사귀마저 홍조가되어 마지막을 장식하듯, 우리의 삶도 아름답게 황혼으로 물들어 갈것이다. 한계절 을 풍미하던 나뭇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듯 나도 나를 지으신 당신 앞에 긴 여정을 내려 놓아야 할 날이 불현듯 찿아올 것이다.   삶의 뒤안길에 찾아오는 따뜻함. 양지 밭에 쪼그려 앉아 땅을 파며 놀았던 유년의 아련한 행복.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함께하는 시간 속으로 잔잔한 울림이 가슴 가득 밀려온다. 하늘은 구름을 그리고, 바다는 물결을 밑그림처럼 무늬 했는데 오늘 나는 어떤 내가 되어가고 있나?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holy hill holy hill 가을 정기로 가을 햇빛

202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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